종로통 명물 '피맛골'

보글보글~情끓는 '먹자 골목'

사람들이 오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대자연속에서, 순박한 인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잊고 지냈던 자신의 본 모습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도시 한가운데,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과 지척인 곳에도 그러한 오지가 있다. 바로 골목길이다. 화려한 도심 스카이라운지의 뒤안길에서 정제되지 않은 모습으로, 그악스러운 그래서 위선적이지 않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곳.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뒤에 찾아가도 여전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그 골목길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또한번 확인한다.


피맛골에는 호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도 부담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값싸면서도 푸짐한 먹을거리가 곳곳에 널려있다.
사람들에게 피맛골이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그 골목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단지 그 골목 이름이 피맛골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사통팔달로 넓게 뚫린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자동차 매연과 소음 한가운데서도 표정변화 없이 우뚝 서 있고, 또 그 옆에는 금빛 광채를 찬란하게 허공에 흩뿌리는 교보빌딩이 있고, 그 빌딩 지하에는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교보문고가 자리잡고 있다.

피맛골은 바로 그 교보빌딩 옆의 골목길이다. 폭 2m 남짓한 길 양쪽으로 음식점들이 빼곡하다.

그러나 서울시내의 그 흔한 먹을거리골목과 이 골목길은 분명히 다르다. 우선 파는 메뉴부터가 그렇다. 빈대떡, 참새구이, 고갈비. 이름만 들어도 물큰 마음 한구석에 가난했던, 김승옥의 ‘소설 1964년 겨울’을 읽고 쓸데없이 심란함에 빠져 술잔을 기울였던 옛 학창시절의 모습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피맛골 초입에 자리잡은 열차집. 386세대들은 비오는 날 열차집에서 마시던 플라스틱통의 쌀막걸리와 노릿노릿한 빈대떡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덤으로 얹어주는 새콤달콤한 어리굴젓의 맛이란.

낮에 찾아간 열차집은 한적했다. 허름한 간이테이블에 목재 의자가 10여개 놓여 있다.

그러나 오후 5시만 되면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저녁 7,8시쯤이면 그 자리가 모두 꽉찬다.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술잔을 들이켜며 허기와 갈증을 채운다.

이 집 주인 윤해순(65)씨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언젠가 내부를 고쳐서 좀 말끔하게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었어요. 그런데 손님들이 모두 반대하는 거예요. 그렇게 고쳐놓으면 더 이상 열차집에 안 오겠다고 협박까지 하던데요.” 열차집은 한국전쟁직후 문을 연뒤 지금까지 빈대떡을 팔고 있다.

그리고 몇집 건너 함흥집. 굴전, 파전도 있지만 이 집의 진짜 별미는 고갈비다. 이 집주인 김용조(62)씨는 42년간 피맛골에서 고등어를 구워왔다.

고등어 반토막이 오르는 한접시에 5000원. 살이 통통히 오른 고등어가 석쇠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약 20m에 이르는 첫 번째 골목은 낙지 불판으로 유명한 서린낙지에서 끝난다.

두 번째 골목은 첫 번째 골목에 비해 조금 스산하다. 팁 4만원이라고 쓰인 초입의 단란주점 네온간판이 오히려 쓸쓸함을 더해준다. 그러나 이 골목에는 문인과 예술인들의 집합소인 시인통신이 있다.

80년대 학사주점을 연상케하는 분위기에 벽이며 천장에는 낙서와 그림이 가득하다. 한쪽 구석에는 기타와 책이 아무렇게 쌓여 있다. 마치 건물 내부 자체가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과도 같다.

시인통신은 지난 20여년동안 소설가 김병총, 이외수, 마광수, 코미디언 전유성, 고인이 된 중광스님 그리고 권영길 민노당대표 등 수많은 예술가와 정치인, 언론인들의 사랑방구실을 해온 곳이다.

“아마 손님들이 이 구닥다리같은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전에는 점잖은신 분들만 왔지만 요즘은 젊은 축도 삼삼오오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몇몇분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오시죠. 처음에는 모두 애송이 같았는데 지금은 우리사회에서 한자리하시는 분들이 됐죠. 멸치가 고래됐다고나 할까요.”

시인통신 주인 한귀남씨는 84년도에 이 집을 인수, 여태껏 운영해오고 있다. 예인들과 어울린 탓인지 본인이 직접 시와 소설로 등단을 했고, 얼마전에는 ‘간큰 남자 길들이기’란 에세이 집을 내기도 했다.

피맛골은 이 두 번째 골목을 지나서도 계속 된다. 종로1가의 한일관을 지나 종로2가의 YMCA에서 한차례 호흡을 가다듬고, 인사동까지 계속 이어진다. 원래 길은 동대문까지 나 있었지만 새로 지은 건물들로 모두 그 모습을 잃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피맛골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맛골의 이름은 말이나 가마를 타고 종로를 지나던 고관대작들을 피해 서민들이 다니던 길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비록 형식적이나마 남 눈치 볼 것 없는 세상이 됐다. 말이나 가마를 피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피맛골을 찾는다. 그들이 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심성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빨리 변하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서 밀리고 있다는 불안감, 그런 것들로부터의 도피 아닐까.

피맛골에서 얻는 것은 세상이 다 변해도 아직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때의 안도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피맛골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1월부터 피맛골 두 번째 골목, 시인통신이 있는 자리에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의 주상복합타운을 짓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건물은 2006년도 완공예정이다.

비록 일부 구간이지만 피맛골의 모습은 아마 지금과 달리 현저히 변해버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도시 살이에 지친 사람들은 또 어디에서 그 갈증을 채울까.




<문화일보 이경택기자/ktlee@munhwa.co.kr/2003.10.09>